[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의 공간구상/자료=국토교통부]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72~1981)
1960년대에 이어 경제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수송, 전력, 통신 등 주요 사회간접자본의 부족 문제 및 시설확대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었고, 도시가 공업화됨에 따라 대도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였으며, 특히 서울에 인구가 집중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당시 도시화율은 50%를 훌쩍 넘어섰으며, 경제적으로는 1970년도에 국민소득이 437달러로 증대됐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를 고려해 새로운 계획의 필요성이 제기,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72~1981)이 수립됐다.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사회 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경제의 능률적 성장을 위해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토개발의 기반을 확립하며, 국토가 보유한 자원의 개발과 대규모 공업단지 개발에 따라 발생하는 환경문제를 해결, 도시문제와 문화적인 생활을 위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는 권역개발과 성정거점개발 방식이 채택됐다. 권역개발은 전국을 4대강과 8중권, 17소권으로 구분해 권역별로 개발을 추진하는 것이고, 성장거점 개발은 서울, 인천, 부산, 울산 등의 대도시를 성장거점으로 지정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주요 추진전략과 계획내용은 권역개발을 통한 집적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국가의 주도로 성장거점 개발 방식을 채택하였고 공업과 농업 기반을 확충했으며, 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농업 생간의 기반을 근대화·고도화했다. 도시와 공업단지의 연결을 위해 교통과 통신망을 확충하였고, 도시와 농촌 간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통신망을 정비했다.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전략은 대규모 공업단지의 개발 및 국민총생산의 극대화, 대도시와 각 지역 및 산업중심지를 연결하는 교통·통신, 에너지 공급망의 확충, 편중된 개발로 발생하는 소외지역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토자원의 종합적 이용·개발 및 각급 지역계획의 기본으로서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민간자본의 투자활동을 유도하며, 고도의 경제성장 뒷받침을 위한 생산기반의 구축을 위해 경부축을 중심으로 한 거점개발전략을 추진했다.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공업을 적정 배치하고, 대도시의 공업 분산 촉진 및 중소도시 공업을 개발하여 산업입지의 균형개발을 강조, 1970년대 전반 13개 공업단지, 후반 27개 중소 산업단지가 조성되었으며 울산, 포항 등 대규모 산업단지가 집중적으로 건설된 동남권지역에 편중되었다.
1970년대의 한국 경제성장 전략 핵심은 중화학공업의 육성이었고, 이에 따라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수출주도형 공업화기반을 구축하고 생산지원기반시설을 확충하는 전략을 중심으로 수립됐다.
여기에는 1960년대 말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이 큰 영향을 끼쳤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착공해 1970년 7월7일 준공, 총연장 413km, 너비 22.4m, 총예산 429억 원으로 1967년 국가예산 규모의 23.6%를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다.
경부고속도로는 한국의 수도인 서울과 제2의 항구도시 부산을 잇는 대동맥으로서 서울과 수원, 천안, 대전, 영동, 대구, 경주, 부산 등을 경유하여 개통 이후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변화되었고 본격적인 자동차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또 소비자 위주의 이용체계가 생산자 중심의 이용체계로 전환되었고, 경부 축을 중심으로 각종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고속 경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는 경제성장을 지원함과 동시에 경부 축을 중심으로 지역 간 격차를 심화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균형 있게 발전하고 농업과 공업이 병행 발전할 수 있도록 모든 산업을 조화 있게 배치했다. 특히 ‘국토구조와 환경 개선’을 위해 국토포장자원개발과 자연의 보호보전, 국토이용관리의 효율화, 개발기반의 구축 등 실시했다. ‘국민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경제성 높은 대규모 공업기지의 구축정비, 교통통신, 수자원 및 에너지 공급망 정비 등 대규모사업을 우선 실시함으로써 사업 효과가 전 국토에 상호 연쇄적으로 파급하도록 계획했다.
이로 인해 수도권과 남동 임해공업지역을 중심으로 산업발전의 기반이 조성됐다. 소양강과 안동, 대청 등에 다목적 댐을 건설해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 개발하게 되었고, 호남, 남해, 영동선, 88올림픽 고속도로 등의 공속도로망과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지역의 전철망, 동해안, 중부내륙 종단 고속화 도로 및 주요 간선 국도의 포장으로 산선 교통망이 형성되었다.
또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 기간 동안 국토계획을 뒷받침하는 각종 제도와 정책이 수립돼 국토계획의 기초적 제도를 마련하고 국토계획으로서의 틀을 갖추게 됐다. 정부주도의 산업단지 조성사업을 강력히 추진하는 등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시행으로 수도권과 동남권에 개발이 편중되어 국토의 불균형 구조가 형성되었고, 지역 간 격차가 심회되기도 했다. 즉, 산업입지 정책에서 1960년대 자유입지에 의한 대도시 집중에서는 탈피했지만 수도권에서는 서울에서 경기도 지역으로 공업입지 광역화, 지방에서는 울산, 포항 등 대규모 산업단지가 집중적으로 건설된 동남권으로 편중 현상이 심화되었다.
거점개발방식은 산업의 공간적 집중 및 인구와 다른 기능의 집중을 유발해 지역 격차를 더욱 심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의 인구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인구분산정책이 시행, 대도시 자체의 인구증가는 완화됐지만 주변지역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돼 지가가 상승되고 부동산 투기현상이 발생하였으며, 개발제한 구역 내 주민생활의 불편함과 재산권 침해 문제, 그리고 개발로 인한 환경훼손의 문제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82~1991)
1985년 한국 인구는 4000만 명으로 급속한 경제성장과 공업화로 인구가 도시에 집중돼 도시화율이 70%를 넘어섰다. 1980년대 초반 국토계획과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경제구조의 고도화를 이루었으나 1970년대 국제통화질서 동요, 석유파동 등 국제정세의 변화를 겪으며 국제경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의 필요성이 인지됐다.
1980년대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수립과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제정으로 수도권 집중이 강력하게 억제되었고, 산업단지의 균형개발을 위한 노력들이 다양하게 진행됐다.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국토의 균형발전과 국민복지의 향상을 기조로 인구의 지방정착 유도, 개발가능성의 전국적 확대, 국민 복지수준의 제고, 국토자연환경의 보전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서울의 인구집중 억제, 지방의 고용기회 및 도시서비스의 확대와 적정규모의 공업을 지방도시에 분산 배치하고, 주택과 상하수도 등 생활환경의 정비 및 국토자원의 절약과 자연환경의 오염과 파괴를 최소화하도록 했다.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성장거점의 집적이익을 확산하고자 하는 단계로, 거점개발과 균형개발을 절충한 광역개발방식을 도입했다.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고 성장거점도시의 육성 및 중소공업단지 조성 등을 통하여 인구의 지방 분산과 정착을 유도하고자 했다. 또 수도권과 태백산, 다도해, 88올림픽고속도로 주변 등의 특정지역을 지정해 이를 뒷받침하는 시행계획들을 구체화 했다.
증가하는 식량수요에 대응해 농업의 생산기반을 확충하고 도시화·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을 관리하였으며,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고 주택가격의 안정 및 주택의 질 향상, 전구 상·하수도 시설의 확충을 통해 국민의 생활환경을 정비했다. 교통·통신 시설 및 지역 특성에 맞는 적정 규모의 공업단지 개발을 통해 국토의 개발기반을 확충했고, 국립공원 및 보전지역 지정, 다목적댐 건설을 통한 국토의 이용·관리에도 힘썼다.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생산 환경 중점 개발에서 탈피하여 국민의 생활환경 개발 및 지역생활권의 거점 육성으로 방향을 전환하였고, 환경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 기간 동안 국토계획의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정책과 법규들이 제정되었으며, 1981년과 1982년에 각 도 단위로 도시계획이 수립돼 지역차원의 개발계획이 가능하게 됐다.
1980년 택지개발촉진법을 제정해 공영개발방식을 도입하고, 대도시지역에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전면 금지하였으며, 주택공급이 시급했던 대도시 주변 대규모 주택단지를 빠른 기간 내에 조상하기 위한 신도시 개발에 이용되었다. 그 결과 20년 사이에 주택보급률을 100% 이상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 이후 서울과 부동산 대도시에 투자가 집중되었고, 특히 88올림픽 개최를 위해 수도권 집중에 대한 기존의 시책을 완화해 지역 격차가 더욱 심화됐다. 이와 함께 국토자원의 부족 및 환경오염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기존 제1차 국토계획의 문제점인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이 본격 가동되면서 수도권과 경부 축을 중심으로 과도한 개발이 이뤄졌기 때문에 지역 불균형이 정치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어 해결하고자 제2차 국토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수도권과 경부 축의 성장세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면서 과밀억제정책은 그 효과를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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