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 국립극장(National Theatre, Denys Lasdun, 1976) <출처 : 위키피디아>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브루탈리즘은 전 세계 도시에서 가장 대담하고 급진적인 건축 양식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유럽, 북미, 동구권에서는 대규모 공공시설과 고밀도 주거지, 대학 캠퍼스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정부 주도의 사회복지 정책과 도시 재건 움직임은 ‘기능 중심의 저비용 건축’을 필요로 했고, 노출 콘크리트는 이를 실현하기에 적합한 재료였다.
▲ 보스턴 시청(Boston City Hall, Kallmann McKinnell & Knowles, 1968) <출처 : KMW Architecture>
이 건축물들은 그 시대를 정의하는 상징이자, 공공성과 진보의 언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브루탈리즘은 새로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건축의 기능적 이상주의가 ‘사회적 거리감’, ‘공간의 비인간성’ 으로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차가운 회색 벽, 반복적인 구조는 ‘사람 냄새 없는 도시’로 비유되었고, 폐쇄적 구조와 어두운 구석이 많은 공간 구성은 범죄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콘크리트 외피는 오염, 균열, 누수 등에 취약했으며, 복잡한 구조는 개·보수 비용을 높여 유지관리가 어려웠다.
당초 브루탈리즘은 저소득층을 위한 진보적 주거 대안이었다.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리 미비, 범죄 증가, 공동체 해체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상은 실패한 유토피아가 되어갔다.1980년대 이후로 브루탈리즘 건물은 하나둘씩 철거되기 시작했다. 처음 설계 의도와 달리 ‘빈곤과 고립’의 상징이 되었고, 도시 이미지 개선이라는 명분 아래 사라졌다.
▲ 앨리슨 & 피터 스미스슨 로빈 후드 가든(Robin Hood Gardens, 1972-2017) <출처 :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