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수렵사회에서는 창과 칼로, 농경사회에서는 농기구를 활용했다. 도구를 활용한 기술혁신은 인간 노동력을 보완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인류사에 기여했다.
16세기 영국의 윌리엄 리(William Lee)는 스타킹 직조기를 만들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특허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타킹을 직조하는 장인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사회가 혼란해져 통치에 어려움이 생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산업혁명기 러다이트(Luddite) 운동 역시 기모기(gig mill) 사용 제한법이 폐지됨에 따라 실업을 우려한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에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1930년대 대표적인 경제학자 케인즈(Keynes)는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으로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기를 겪은 1960년대 미국에서는 적절히 계획하고 현명하게 활용한다면 자동화는 번영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정보기술이 사회 전반에 전파되면서 컴퓨터의 가격 하락과 소프트웨어 발전 및 기계 자동화의 속도가 빨라지게 되자, 사람들은 기계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바코드 스캐너를 활용하면서 상품의 재고 정리가 한결 수월해졌고, 현금자동입출금기가 대중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단순히 현금 출납을 위해 은행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높은 빌딩 건설에 필요한 건축 설계 역시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그려지고 있다.
인공지능과 일자리 충격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서는 기하급수적으로 빠른 속도와 광범위한 영역 체계에서 우리의 일하는 방식과 삶에 영향을 미칠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각각의 분야에서 분절적으로 발전해 온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및 퀀텀 컴퓨팅(Quantum Computing), 사물인터넷, 로봇기술, 3D-프린팅,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에너지 저장 등 각각 부문별로 발전하던 기술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특히 다보스포럼에서 발표된 ‘직업의 미래’ 보고서는 눈 덮인 다보스의 아름다운 절경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우울하고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20년까지 대부분 직업에서 절반 정도의 과업이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되고, 향후 5년간 510만 개의 일자리가 순전히 사라진다고 지적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710만 개의 일자리가 소멸하는데, 이 약 3분의 2가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무행정직(화이트칼라)이었다. 반면 200만 개의 일자리가 컴퓨터, 수학, 건축 및 공학 관련 분야에서 새롭게 창출된다고 밝혔다. 사라지는 일자리 대다수가 우리 사회의 ‘사농공상’ 즉, 직업 위계 전통에서 선호돼왔던 사무직이라 충격은 컸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전해진 4차 산업혁명과 직업의 미래 보고서는 서곡에 불과했다. 최근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기계학습의 일종인 딥 러닝에 기초한 ‘알파고(AlphaGo)’의 세기의 대결은 세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이벤트였다.
인간을 대표한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을 대표한 알파고에 1대 4로 종합 전적에서 패하게 되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이 수행하는 일들을 대체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불안감이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됐다.
그러나 기술혁신이 곧바로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경제적 실익이 있어야 한다고 전언하고 있다.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1000대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하드웨어 장비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그리고 전기 요금, 물리적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지대가 필요하다.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 또 단순 반복적인 과업(Task) 중심으로 대체되는 것일 뿐 여전히 중요한 의사결정과 감성에 기초한 관련된 직무는 인간이 맡게 될 것이므로 막연히 일자리의 소멸을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