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던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선선해진 가을바람은 무더위로 지친 몸에 활기를 보내준다.
때마침 쓰린 속과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가 시원하고 얼큰한 맛에 홀려 소주 한 잔을 곁들이게 되는 맛집이 있다.
정릉천이 흐르는 시장 골목 어귀에 ‘기차순대국’이라는 재미난 이름의 순댓국집이 바로 그 곳이다. 식당 외관에서부터 한옥 구조로 되어 있어 마치 시골집에 찾아온 기분이 들 정도로 푸근함과 넉넉함이 느껴진다.
“이곳이 기찻길이었을리는 만무하고, 기찻길 주변에서 장사하다 이전한 건가, 아니면 기차게(?) 맛있어서 기차순대국인 걸까?” 궁금함을 갖게 된다.
‘기차순대국’은 현재 한옥을 개조해서 운영 중이지만, 50여 년 전에는 간판도 없이 시장 한 켠에서 순댓국을 팔았다고 한다. 이후 도시개발이 한창 진행될 즈음, 구역이 나뉘어져 건물이 잘려나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좁고 길쭉해진 공간에 테이블을 길게 늘어놓고 장사를 하게 됐다.
그렇게 길게 앉아서 먹는 모습이 꼭 ‘기차에서 먹는 것 같다’고 하여 손님들 사이에서 기차순대국이란 별칭이 붙었고, 그 별칭이 그대로 가게 상호명이 됐다.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순댓국을 주문하면 배추김치, 깍두기, 풋고추, 마늘, 쌈장, 새우젓, 부추무침 등 순댓국을 즐기기에 딱 알맞은 정도의 찬들이 나온다. 순댓국은 푹 끓여낸 뽀얀 국물과 함께 ‘이게 보통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건더기가 푸짐하게 들어있다. 그 푸짐함에 기분 좋게 한 술 떠 보니, 이 집의 순대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먹는 검은 순대가 아닌 하얀 순대다.
하얀색의 정체는 바로 두부. ‘기차순대국’은 순대의 주재료인 선지 대신에 하얀 두부를 으깨어 섞는다. 그래서 선지를 꺼려해 순대를 잘 못 먹는 사람들도 이 집 순대는 거부감 없이 즐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순대 속에 들어가는 돼지고기는 존재감 있게 굵게 다져넣어 씹는 식감도 좋아 순대를 좋아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예전에는 선지를 넣은 일반 순대도 함께 판매를 했었는데, 손님들이 이 집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백순대만 찾아서 지금은 백순대만 메뉴로 내놓고 있다.
순댓국집을 시작할 때 이 집만의 특별한 순대를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다는 두부순대는 하얀 비주얼과 깔끔한 맛, 무엇보다 ‘기차순대국’에서만 유일하게 맛 볼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직접 만든 건강한 음식’ 이라는 이미지까지 더해져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오랜 시간 육수를 고아내고 탱글탱글한 식감의 담백하고 고소한 두부순대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아 그 맛이 일품이며, 소주 한 잔 곁들이기에 썩 잘 어울리는 안주도 된다.
영양과 맛은 기본, 깔끔한 반찬과 특별한 순대의 정성까지 듬뿍 들어간 두부순댓국을 맛 본 손님들은 ‘기차순대국’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인기가 있는 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기차순대국’은 5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1대 사장님의 넉넉한 인심과 한결같은 손맛이 그대로 그의 딸에게 이어져 2대째 맛집으로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