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동소문로(돈암동)에는 인근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상권이 생성돼 있어 젊은이들을 위주로 유행 변화가 빠르다. 그 중 프랜차이즈가 즐비해 있는 중심가는 특히 유행이 지나면 장사가 잘되지 않아 다른 음식점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밀양 손칼국수집 외관/자료=urban114]
시끌벅적한 중심가를 조금 벗어난 한적한 골목길, 전화번호가 다 지워져 보이지도 않는 간판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낡은 간판 위에 허름하게 붙어있는 일곱 글자, 밀양 손칼국수집이다.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간판 밑 입구에 들어서면 한적한 바깥과는 달리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무심한 듯 백발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사장님과 오랜 세월 이곳을 즐겨 찾은 듯 한 연륜이 느껴지는 손님들을 보니 벌써부터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든다.
자리를 잡고 앉아 칼국수를 인당 하나씩 주문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테이블마다 수육과 고기가 있는 접시가 꼭 하나씩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반+반’이란 메뉴가 눈에 띈다. 한 접시에 수육과 전이 반반씩 담겨 나오는데, 이 집의 최고 인기 메뉴라는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추가 주문한다.
[보통 사이즈로 주문한 손칼국수 한 그릇/자료=urban114]
칼국수는 약간의 건더기에 양념장이 살짝 뿌려진 심플한 느낌으로 뽀얀 사골 국물과 면이 한 그릇 가득 꽤 많은 양이 나온다. 국물은 평양냉면 같은 슴슴하고 담백한 맛이 나며, 직접 썬 면은 푹 익혀져 나와 쫄깃한 식감보다는 후루룩 부드럽게 잘 넘어가 부담 없이 잘 들어간다. 간이 세지 않아 다소 심심할 수도 있는 부분을 적당히 매콤새콤한 아삭하게 잘 익은 직접 담근 김치가 충분히 채워준다.
‘반+반’에 나오는 수육과 전은 칼국수 집에 와서 1인 1칼국수를 시켜놓고도 왜 굳이 추가로 꼭 주문하는지 맛을 보니 알 것 같다. 이곳은 칼국수도 물론 맛있지만, 이 수육과 전에서 상당한 내공이 느껴진다. 수육은 잘 삶아 누린내 하나도 없는 소의 아롱사태 부위를 결 반대로 썰어 쫄깃하고 부드럽고 촉촉하다. 큼직하게 포를 뜬 흰 살 생선을 노란 빛깔로 예쁘게 부쳐낸 전은 촉촉하고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수육과 전이 반씩 담겨 나오는 ‘반+반’ 한 접시와 간장과 김치/자료=urban114]
맛있는 전과 수육을 포개어 잘 익은 김치를 얹어 삼합으로 즐기는 이들을 보니 한두 번 먹어본 사람들이 아니다. 곧바로 따라서 먹어보니 입안에 행복이 가득 찼다. 맛있는 것과 맛있는 것을 더했는데 어찌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 담백한 칼국수 국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나니, 왜 이 집에 단골이 많은 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극적인 맛은 익숙해지면 곧 질리게 마련이지만, 자극 없는 담백함은 쉽사리 질리지 않는다. 이 점이 빠르게 변화하는 중심가 옆에서 한결같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곳의 비결이 아닐까. 아직은 자극적인 맛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는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상을 더 오래 살고, 더 많이 먹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맛이다.
시간이 흘러 간판이 사라질지라도 이 맛만은 그대로 남아, 그 맛을 기억하는 손님들의 발걸음과 행복이 끊어지지 않길 바란다.